사진 속의 나는 웃고 있다.725Please respect copyright.PENANAY04vw8BVwu
조금 삐뚜름한 이빨을 활짝 드러내고서, 한쪽 팔을 그 애의 어깨에 얹고, 그렇게 세상을 다 가진 듯이 웃고 있다.
그 애도 콧잔등에 겨우 걸쳐진 안경 너머로 미소 짓는다. 그 애의 손은 내 손을 꼭 붙든 채다.725Please respect copyright.PENANAtqcfUGlOyz
사진은 많이 흔들려서 찍혔던 것 같다. 그 애 얼굴도, 목소리도 이제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배경으로 찍힌 벤치에 그대로 나란히 앉아 잠들어버렸던 일은 어제 일인 듯 뚜렷하다.
“……찢어버릴까.”
비상등 불빛에 비친 사진 속 우리는 초록색으로 물들어 있다. 옛날 영화에 나오는 초록 난쟁이들처럼.
“에? 뭘 찢어?”
덜컥, 하고 눈앞으로 거꾸로 뒤집힌 머리통이 떨어졌다.
잠시 소리 없는 절규의 시간. 그리고……
“놀랐잖아요, 형!”
괜한 지청구를 날리면서 형을 쏘아보았다.
친형은 아니지만, 같은 방을 쓰는데다 활동 여러 개가 겹치다 보니 저절로 가까워진 선배라 형이라고 부르곤 했다. 본인은 ‘형아’라고 불러달라고 했지, 참.
형은 선내 중력장치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맘껏 즐겨 보려는 양 이층 침대의 난간을 붙잡고 휙 돌아 내 매트리스 위에 안착했다. 아니, 매달렸다고 해야 하는 건가?
“뭘 봐, 애인 사진?”
바보를 상큼하게 무시하며 사진을 도로 접어 지갑에 넣으려…… 했는데.
바보 손이 더 빨랐다.
“얘가 네 여친? 괜찮게 생겼네. 어디서 본 거 같은데.”
“이리 내! 세요!”
저런 놈에게는 존댓말도 아깝지만, 말 잘라먹었다가 어떤 복수를 당할 지가 더 무서워. 베개가 생크림으로 가득 차 있는 꼴 보고 싶지 않으면…… 쳇.
“누군지 대답하면!”
“꽤 유명한 물리학자래요. 워프 개발에 일조한. 그리고 여친 아니에요.”
그 말에 형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씩 웃었다.
“그래애, 여친 아니겠죠오, 네에?”
“진짜 아니라니까요! 여기-”
나는 보이는 거라곤 암흑밖에 없는 창문으로 짜증스럽게 손을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오기 전에 헤어졌다고요.”
“아, 뭐 그런 거였냐? 난 또 은하연인 어쩌고 그런 건 줄 알았네.”
도대체 그 실망하는 표정은 왜 짓는 거야?
“그럼 너 차였던 거?”
“그렇다고 할 수 있겠죠, 뭐.”
“차인 거면 차인 거지 그 영혼 없는 대답은 뭐냐.”
“대판 싸우고 차이기 직전에 탑승했습니다, 선배님!”
오랜만에 꺼내 드는 군대식 말투. 왜냐고?
바보 퇴치의 1번 수칙. 뭐든 하라는 대로 해 준다. 그러면 저가 질려서 다른 타겟을 찾아 나서게 된다.
“야, 지구 떠난 게 언젠데 이제 와서 사진 보고 청승이야?”
말해도 되나 잠깐 고민했다. 딱히 안 될 이유는 없었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아서. 그래도 이 형이라면 괜찮을 것 같은데, 거기다 말해 주면 제발 꺼져 주려나.
“……어제 통신 장치 복구되고 보니까 연락이 와 있더라고요. ‘너 살아있냐’라고. 근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우주선 고장 난 건 어떻게 알고 연락까지 해 줬대? 신기하네.”
“그런가요?”
행성 개척 탐사선은 이 배가 최초이자 유일하니까, 지구에서는 연일 특종으로 보고하고 있다고 해도 별로 이상할 일은 아니지. 그래도 그 애가 우주 관련 뉴스를 보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사실 기분 좀 이상해요. 걔, 내가 이 프로젝트 참가하는 걸 엄청 싫어했거든요. 나 같은 애가 이런 위험천만한 일을 왜 하느냐고. 안 위험하다고, 안 죽을 거라고 큰 소리 뻥뻥 치고 왔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얼마 전에 발전기가 고장 나서 기기 전원이 다 꺼졌을 때는 정말 무서워 죽는 줄 알았다. 비상 전지로 산소 공급기하고 물 재사용기만 간신히 돌아가니까 다들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가고, 숨조차 크게 못 쉬었으니. 산소 떨어져서 죽기 전에 스트레스 과부하로 죽을 것만 같았다.
“그 애 어머니가 우주 비행사였다고 그러데요. 화성 기지만 열 몇 번을 오갔다고. 그런데 어느 날 우주선 뭔가가 뭐에 맞고 떨어져 나가서 우주선이 유령선 꼴 나 버렸다고 했거든요. 무슨 이유에선지 지구로 돌아오지도 않았고. 자기 엄마 시체가 우주 어딘가에서 떠 다니고 있을 걸 생각하면 밤하늘만 봐도 소름 끼친다고 그랬어요.”
나도 모르게 전부 털어놓고 있었다. 어쩌면 나, 그 동안 계속 이렇게 이야기해 보고 싶었던 거였을지도.
“걔가 그렇게 싫어하는 거 알면서도 온 거야?”
‘차일 짓을 했구먼,’ 하는 형의 한심한 표정에, 그만 피식 웃어버렸다. 그래, 내가 봐도 차일 만 하긴 하다. 그렇지만…….
“중학교 때, 역사 교과서에서 옛날 지도가 하나 있었어요. 신 항로 개척에 대해 배우던 무렵이었을 걸요. 그 지도에서는 유럽만 크게 그려져 있고, 먼 바다에는 ‘여기 용들이 살고 있다’라고 적혀 있었거든요.”
“그래서? 요즘은 세계지도도 다 있고 그러잖아. 뭔 상관?”
그런 식으로 말하면서도 형은 미묘하게 알 것 같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기야 형이라고 이 일을 시작한 이유가 없을까.
“그 때는 그냥 아쉽다, 이제 용들이 사는 곳은 사라진 건가, 하고만 생각했는데, 지구 밖의 땅으로 갈 수 있게 됐다는 걸 알고 나니까 말이죠…… 용들을 찾고 싶어졌어요.”
나를 빤히 쳐다보는 형의 시선이 불편해져, 워프 드라이브로 일그러진 우주선 바깥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나아가지만 나아가지 않는다는,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기이한 개념. 그렇기에 더 와 닿는 듯한.
“꿈과 사랑 중에 꿈을 선택한 거구나, 너는.”
“무슨 소리에요? 나, 진짜로 그 애 사랑했다고요.”
나 자신도 감히 믿지 못하는 말. 사랑했다면, 홧김에 술 퍼 마시고 홀라당 지구를 뜨지는 않았을 텐데. 사랑했을까?
사랑하지 않았다면, 왜 이렇게 힘든 거지.
“그럼 나 하나만 물어보자.”
불편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울었니?”
형은 사진을 내 손에 쥐어주며 물었다.
추궁은 아니었다. 대답을 요구하는 질문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리고 내가 이미 답을 알고 있는.
울고 싶었다. 아이처럼, 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어 젖히고 싶었다. 그러면 조금이라도 나아질 것 같아서, 이 아픈 미련이 사라질 것 같아서.
사라져버릴 것, 같아서.
“아, 불 다시 켜진다.”
형이 전등을 가리키며 말했다. 진지한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는, 약간은 바보스러운 괴짜 연구원으로 돌아온 채로.
나는 서서히 깜박거리다 밝아지는 불빛을, 본래 모습을 되찾아가는 사진을 바라보았다.
여기까지 전기가 들어왔으면 컴퓨터도 쓸 수 있는 거겠지. 지구로 돌아가려면 이 년은 남았고.
답장…… 해볼까.725Please respect copyright.PENANA6h1P1bLC99